작년 연차학술대회 전날 김선주 특별위원장님께서 무심한 듯 툭 내뱉은 한마디는 내 실존의 모습에 경고를 던진 듯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이 문장은 저자 하완의 책 제목이기도 한데, 김위원장님의 그 표현은 곧바로 나의 어이없는 웃음을 자아냈고 그 신선함과 민망함을 이기지 못해 순간 나는 그녀에게 반해버렸다. 우리 TA 사람들은 그 말을 들을 때 ‘열심히 하라 드라이버’를 곧바로 연상해 낼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하라 드라이버’에 사로잡혀있을 때 그것은 우리 자신을 실패로 이끌어가며 결국 유쾌하지 않은 라켓감정(Racket Feeling)을 맛보게 되므로 피해야 하는 것이라고 배웠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에 대하여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하마터면 행복할 뻔했다.’라는 말에는 대부분 의아해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한다고 생각하지 불행을 추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막상 행복하려고 하면 두렵고 낯설다. 그 이유로 어떤 사람들은 어린 시절 양육환경 속에서 “행복하지 마라”라는 금지명령을 받았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행복한 모델이 없었거나, 불행하게 사는 모습이 정신 구조 속에 프로그램되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족 스트로크 패턴을 통하여 더욱 강화되어 진다. 사람들은 어린 시절 가정에서 학습되고 익숙해진 유쾌하지 않은 감정을 성인이 되어서도 유지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조작하는 라켓을 사용한다. 그래서 행복은 어린이 자아가 가장 바라고 있으면서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예를 들어, 몹시 불쾌한 감정을 가질 때마다 하고 싶지 않은 것에서 방면된다는 것을 학습한 아동은 성인이 되어서도 ‘바쁘다’, ‘피곤하다’, ‘아프다’ 등의 라켓을 사용하여 집안일에서 해방되거나 짜증을 내는 것을 정당화할 것이다. 이처럼 불행한 것에 스트로크를 받아온 사람은 외로움이나 슬픔, 비난, 또는 무력감 등의 구실을 가지게 되고 나중에는 불행을 습관화할 것이다. 재결단 학파(The Redecision School)의 중심인물인 굴딩(Robert L. Goulding)은 이런 사람들에게 행복을 경험한다는 것은 부모금지명령에 위배된 것이며 또한 너무 낯선 것이어서 “위험에 빠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주로 집안일을 하시면서 시를 읊거나 노래를 부르셨다. 대부분 이별과 슬픔, 그리고 한이 서린 내용이었다. 때로는 어머니가 빨래를 하시는 동안에 나는 비장하거나 애처로운 가곡을 연주해야만 했다. 이 애절한 피아노 소리로 이웃집에 사는 어른들의 마음이 감동했고(내가 피아노를 잘 쳐서 그런 건 결코 아니다.) 어머니는 흡족해하신 것 같았다. 중학교 때 어머니는 나에게 ‘세계의 명시’라는 시집을 사주셨고 나는 그 시집을 보자마자 제일 먼저 그동안 익숙해진 슬픈 시들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사랑하는 임과 이별의 슬픈 사연을 구슬프게 노래한 서정주 시인의 귀촉도를 붓글씨로 써서 교내 축제 때 전시했고, 선생님들에게 긍정의 스트로크를 받기도 했다. 결국,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기가막힌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신혼 초에 아버님의 회갑 잔치가 있었는데 나는 거기서 정태춘의 ‘촛불’을 불렀다는 것이다. 많은 친척과 어른들이 이제 갓 시집온 새 며느리의 재롱을 기대했을 터인데 나의 구슬픈 노래에 흥겨운 분위기는 급격히 냉랭해졌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 당시 나는 과거의 각본에 짜 맞춰진 라켓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가끔 내 존재가 슬픔의 바다에 녹아버리는 듯한 경험을 하곤 했다. 교류분석을 만나고 나서야 나는 슬픈 라켓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마치 담배를 끊은 사람들이 담배 냄새가 역겨운 것처럼 이제 나는 이 슬픈 라켓이 역겹게 느껴진다.

  최근 월례연구회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끝으로 이 글을 맺어보고자 한다. 우리는 행복해지는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집에 돌아가면 잠을 자지 않고 아내를 기다리고 있는 남편에게 “왜 아직도 잠을 자지 않고 나를 기다려서 사람을 피곤하게 하냐!”라고 짜증을 내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여보 내가 걱정되어 아직도 주무시지 않고 계셨어요  고마워요.”라고 말하면 우리는 금방 친밀해져서 행복해지니까. 또 만약에 남편이 설거지를 해 놓았으면 “깨끗하게 하지도 못할 거면서 설거지를 왜 했어요!” 하고 버럭 화를 내기로 했다. “여보 당신도 피곤할 텐데 설거지를 해주어서 고마워요. 역시 당신밖에 없어요.”라고 말하면 우리는 더욱 사랑하게 되어 행복하게 될 테니까. 어떤 남편은 ‘하마터면 행복해질까 봐’ 모처럼 극장을 갈 때도 아내와 함께 나란히 걷지 않고 표를 예매해야 한다는 구실로 먼저 앞서간다고 한다. 그에게는 그런 행복이 낯선 것이다. 그리고 위험한 것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우리에게 본보기로 보여주지 못한 부모님을 원망하며 살자고 했다. ‘하마터면 행복해질까 봐.’ 그날 월례연구회는 모처럼 웃음바다였다. 여러분에게 행복은 얼마나 익숙하고 안전한가